가정 환경

페툴라 귤렌

페툴라 귤렌에 따르면 “시는 간청과 마찬가지로 인간 내부세계의 기복과 열정과 슬픈 감정을 표현한다. 사람이 고양된 진리에 몰두해 있으면, 신의 숨소리같이 된다.” 학자, 철학자이면서 시인인 귤렌이 1941년 11월에 태어났을 때에는 그런 세계였다.

신의 세계에서 운영되는 한 가지 주요 법칙은 아주 커다란 것도 아주 조그만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으로, 예컨대 에콰도르에서 자라는 세쿼이아 나무는 무게가 약 30 톤이나 되지만 그 씨앗은 0.7 밀리그램 불과하다. 대양을 물 한 방울에 숨기면서,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액을 인간 유기체의 기본 재료로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신 앞에서의 무력하고, 빈곤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는 한, 인간은 신의 권능으로 강해지고 신의 부로 부유해지며 신의 영원성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역사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늑대의 젓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되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라마르틴이 말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인간 위대성 기준으로, 가장 위대한 사람인 무함마드는 사막 가운데 있는 건조한 계곡에서 자랐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조그맣고 하잖은 공국에서 시작한 것이다. 귤렌 자신은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는 아주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에르주룸 지역의 하산칼레 구역에서 50-60 가구가 사는 코루주크라는 아나톨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터키 동부에 있는 완 호수 근처의 산악지대에 있는 비트리스의 작은 마을인 아라트에서 왔다. 옴미아드와 압바스 왕조의 압제에서 벗어나, 선지자의 자손들은 터키 동부의 산악지대로 정착하여 “눈꽃처럼 피어나면서”고유한 정신세계를 형성해 갔다.  이런 배경하에 비트리스와 그 인근지역은 터키 부족과 이슬람 정신이 만나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귤렌은 이슬람 정신이 충만한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가족과 어린 시절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가족에서 코루주크에 처음 정착한 사람은 나의 증조부인 몰라 아메드이다. 하릴 에펜디의 아들인 훌시드 아아의 아들이다. 증조부는 뛰어난 지식과 경건함을 가진 특출한 인물로, 그 생애의 마지막 30년 동안은 발을 침대에 뻗어 잠자는 법이 없었다. 졸리면 앞머리를 오른손에 언고 잠깐씩만 잤다고 전해진다.

나의 조부인 사밀 아아는 일면 증조부를 닮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진지함과 위엄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했다. 이런 영향 이외에도 할머니인 뮤니세 하늠은 나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말이 거의 없고 이슬람을 그녀의 삶에 전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한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도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물자 부족, 빈곤 속에 작은 마을에서 자랐지만,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는”왕족의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한다. 이 너그럽고 지식을 사랑한 고상한 아버지는 기민한 머리의 소유자로 그 행동이 절묘하게 표출되었으며,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이슬람에 향해 있었다. 외할머니인 하티제 하늠은 모든 면에서 경건의 상징이었다. 그 딸인 나의 어머니인 레피아 하늠은 동정심과 심오함의 상징으로,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때 모든 마을 여자와 나에게 성 꾸란을 가르쳤다.

손님, 특히 학자들은 우리 집을 자주 방문했으며, 가족들은 그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있어 본 적이 없으며, 그 대신 나이가 많은 이들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마음과 가슴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들었거나 직접 만든 재미난 말로 장식하고는 했다. 이는 아버지가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말한다. 절대로 적절하고 합당한 선을 넘지 않는 점이 감명 깊었으며, 사랑이나 분노 표시에도 이런 선을 지켰다. 사도님의 동료들의 가르침을 철두철미하게 따라, 나와 형제자매에게 그 가르침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었다.

우리 가족 말고는 무함메드 류트피 에펜디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영감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가 말할 때마다 주의 깊게 들었다. 지상에 살며시 내려온 천상의 목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16살 이었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나의 의식과 인식 세계를 처음으로 깨우쳐 준 사람이고, 내 나이가 그 뜻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어려, 그 말의 요점을 이해하려 많이 노력했다. 지금 나의 직관력, 감수성, 감성은 많은 부분 그로부터 배워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페툴라 귤렌, 나의 작은 세계, 일간지 자만의 라티프 에르도한 기자와 인터뷰에서]

귤렌이 말하는 것처럼, 이런 특이한 가정 환경은, 지역의 모든 지식인이나 영적으로 깨우친 사람들이 아무 때고 잠시 머물다 떠날 수 있는 영빈관과 같았다. 이렇게 나이든 사람과 일찍 접촉할 수 있어, 젊은 귤렌은 거의 출생 시부터 지식과 영적 세계에 몸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귤렌의 최초의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교육은 독서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성 꾸란을 읽거나 시를 암송했던 아버지로부터였다. 라미즈 에펜디는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 동료들에 매료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책은 너무 많이 읽어 닳거나 찢어지곤 했다. 그들에 대한 이런 열렬한 사랑을 아들에 심어줘, 이는 귤렌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질의 하나가 된다. 이런 점은 아버지 집에 있는 향로에서 피어난 연기처럼, 귤렌의 선지자와 그 동료들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의 오래된 마을들

우리가 오래된 마을을 생각하면서 연상되는 깊은 침묵, 명상적 고요함이나 마술적인 성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날 골짜기나 숲 속에서 느껴 환희에 젖을 수 있는 고요함은 항상 우리의 오래된 마을의 자연스럽고 영구적인 모습이었다. 예전의 마을과 도시 사이에는 따뜻한 유대감과 달콤한 균형이 있어 시골 사람은 도시나 도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그들도 시골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도시 사람들은 종종 시골로 내려와 살기도 했다. 그 당시 소도시로 생각되었던 시골 마을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거기에서 도시 사람들이 즐거움과 휴식을 찾고 자연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우리의 오래된 마을에는 항상 유쾌한 적막과 고요함이 있었다. 아침나절의 햇빛, 양들의 울음소리, 곤충과 새들의 지저귐은 우리의 마음을 환희에 젖게 하고, 자연의 깊은 내면의 음악에 일부가 되어 오케스트라를 이뤘다. 저녁에 모든 존재는 적막에 싸이고, 우리가 꿈을 꾸게 신비로운 마법을 건다. 밤은 항상 적막과 고요함의 노래로 울려 퍼졌다.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목인 이 세상에서의 기도는, 다른 세상의 언어를 찾아, 다른 세계의 연주회로 초대되어 더 깊고 영적인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이 된다. 그 신성한 시대에 속하는 생각과 분위기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한, 우리는 그런 과거와 단절될 수 없으며, 또한 미래에도 분리될 수 없다. [이즈미르의 황금시대, 1994, 37-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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