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렌 운동의 진화

페툴라 귤렌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떤 운동이 대중에게 사회운동으로 뚜렷이 인식되기 전에는 운동의 성분은 잠시 “배양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1] 그의 설교와 녹화된 메시지를 통해 귤렌의 사상과 정신은 1980년대 초에 이르면 터키에서 잘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점차 많은 사람이 귤렌이 고취한 소베트(sohbet)에 참가하였다. 이는 지역 서클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그의 사상을 토의하고, 그가 제안한 기숙사와 준비과정 교육을 시작하고, 이들과 다른 봉사활동을 재정지원하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유로운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봉사활동을 지원할 재원을 가진 사업가 등 이런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귤렌이 설교한 마을과 도시에서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에 이르면 귤렌에 고취된 사업가와 교육가들은 학생 기숙사, 대입 준비학원, 교사 협회, 출판사, 잡지사 등의 기구를 만들어 터키 교육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이미 시작된 봉사활동을 가속화하고 터키에서 학교와 병원 건립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자원이 (고취된 사람들의 비공식적 네트워크와 상당한 재정 기부 등) 확보된다. 이 시점에 미디어는 운동을 알게 되고, 운동과 그 활동에 대한 신문기사를 통해 또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네트워크 활동의 “잠복기”가 발전기로 접어들고 구성원들이 사회운동의 개념으로 뭉치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었다.[2] 대중들은 이제 “귤렌 학교”, “귤렌 운동” “귤렌 지지자들” 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귤렌 자신은 운동을 귤렌 운동이나 귤렌 공동체로 부르는 법이 절대 없으며, 이런 이름 자체를 거부한다. 그 대신 귤렌은 운동을 “자원봉사 활동” 또는 히즈메트 (hizmet,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나 고매한 인간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운동)로 부르기를 바라고 있다.[3]

1980년대 중반에 귤렌 학교는 터키의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터키 전역에서 알려진다.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은 대입시험에 일반 학생보다 훨씬 높은 합격률을 보였으며, 또한 많은 귤렌 고등학교 학생들이 국내 및 국제 과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제 귤렌 학교와 귤렌 운동은 대중으로부터 넓게 인식되기 시작하여, 운동에 나타난 이념에 가치를 부여한 참가자를 더욱 끌어 모았다. 귤렌의 교육과 비정치적 봉사 사상에 고취된 활동이 귤렌 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학교가 성공을 거두는 시점이었다.

1991년의 소련의 붕괴와 이에 따른 중앙아시아의 터키계 공화국의 독립으로 귤렌 운동이 국제화되는 발판이 마련된다. 이미 1980년대 말의 설교에서 귤렌은 청중에게 대부분 조상과 언어가 터키계로 곧 독립할 국가들을 도울 준비를 하라고 예견한 바 있다. 소련 붕괴 후 얼마 되지 않은 1992년에, 귤렌에 고취된 일단의 사업가와 교사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최초의 학교를 설립한다. 같은 해, 최초의 귤렌 학교가 카자흐스탄에 개설되고 그 후 이년 동안 28개 학교가 그 나라에 추가로 개설되었다. 1992년과 1994년 사이에 운동 참가자는 키르기스스탄에 학교를 개설하여, 현재 이 나라에는 12개의 고등학교와 한 개의 대학교가 있다. 동시에 20개의 학교가 투르크메니스탄에 세워졌다.[4]

일부 참가자들이 터키계 공화국에 학교 설립에 여념이 없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은 동유럽과 구 소련의 비무슬림 국가에 - 불가리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등 - 유사한 학교를 개설했다.  한편,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필리핀, 캄보디아, 호주,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에 학교를 세웠다.[5]

귤렌 운동 발전 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이 운동이 터키, 무슬림 전통의 국가뿐 아니라 기독교, 불교, 힌두교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칼욘주(Kalyoncu)는 그 이유로 당초 운동이 이슬람 담론으로 터키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질의 교육, 타인의 동정적 수용, 보편적 도덕가치 등 세속적, 인간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운동이 개별 단계에서는 이슬람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세속적 사회운동인 것으로 그는 결론짓고 있다.[6]

1980년대를 통해 귤렌의 가르침에 고취된 아나톨리아의 신 중산층은 터키의 여러 곳에 학교 건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오잘 대통령 치하의 터키의 정치/경제의 발전과, 세계적인 정치 상황의 변화에 힘입어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발판이 마련된다. 소련의 붕괴, 터키 정부의 정보와 자본의 이동에 대한 통제 완화, 터키인의 유럽 이주 증가와 세계 정세의 변화는 귤렌 운동이 터키내의 소규모 집단에서 귤렌 운동의 이상에 심취된 부유한 신흥 사업가 계층이 참가하는 세계적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7]

1990년대까지 의심할 여지없이 수백만의 사람들이 페툴라 귤렌의 이념을 중심으로 그들이 사회운동으로 지원하는 수백 개의 봉사활동을 통해 모이게 된다. 이 운동은 터키에서 신앙에 바탕을 둔 가장 큰 규모의 운동으로,[8] 놀라운 점은 이 운동이 터키-이슬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무슬림 국가뿐 아니라 많은 비무슬림 국가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에 대한 설명으로, 조직의 지도력, 자원봉사자, 기부자, 운동의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운동의 토대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 학생, 사업가, 전문가로 정착하는 터키의 해외 이주민에 의해 이전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에 귤렌 관련 기관을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이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교육이나 사업 목적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나라에 정착 후, 운동과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동의 지지자와 참가자들이 세계의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 귤렌 관련 사업을 시작하면서, 외국인들도 이 운동을 알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 이제 귤렌 운동은 그 규모나 영향력에서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1] Komecoglu (1997); Della Porta, Diani (1999); Melucci (1999)
[2] Komecoglu (1997)
[3] Cetin (2010)
[4] Kalyoncu (2008)
[5] 같은 책에서
[6] 같은 책에서
[7] Kuru (2005)
[8] Full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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