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 “국가”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나?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이슬람 관점을 연구하고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흔히 성 꾸란과 선지자의 순나(행동규범)로 만들어진 이슬람과, 샤리아(이슬람 율법) 원칙에 바탕을 두고 이슬람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구축된 이슬람 및 현대의 피상적 관찰에 의한 이슬람 사이를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보여준다. 때에 따라 성 꾸란을 인용하고, 선지자의 말이나 동시대 사상가의 사상이나 제안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해석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이슬람의 원칙과 역사에 사유나 새로운 제안의 여지가 아주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즈티하드(독자적 판단)와 크야스(유추 및 비교)는 종교의 기본원칙 이외의 부문에서 행해져야 한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문에는 모든 이즈티하드가 행해져야 하며, 또한 이슬람의 주요 원칙에 합치해야 한다. 그런 경우, 독자적인 추론(이즈티하드)을 수행할 수 있는 해박한 사람은 그 자신만 그 해석에 대한 의무성을 지니며, 다른 사람은 의미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런 독자적 추론으로 다른 사람을 속박하지 않는 다는 것이 종교의 원칙이라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 또는 요즈음 세상의 환상이나 욕구를 다른 사람을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이슬람에서 허용되지 않으며, 또한 “이것이 종교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런 의도는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성 꾸란과 선지자의 순나에서 유래하지 않고 종교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사상에는 수많은 계획이나 의견 제시가 따를 수 있어 그 정통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무슬림 대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된 무슬림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제안은 절대적으로 오래 갈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어 존중되는 종교의 주요 근원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현대인들의 욕구는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만족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요 근원이거나 혹은 이런 근원을 바탕으로 형성된 학자의 해석이든 간에 “이슬람에서 국가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나?”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슬람에서 지배와 통치권은 하나님에 속한다. 성 꾸란의 몇 구절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며 지배와 명령은 하나님에 속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남녀 신도들아, 하나님과 그 사도가 결정을 내리면 너희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다.” 이를 통해 성 꾸란은 통치권이 신정 국가와 같이 정신적 지도자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감시 기능이나 다른 형태로 조직된 종교 단체 어느 곳에도 속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너희 중 하나님의 눈에 가장 고귀한 자는 가장 정의로운 자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가족, 계급, 인종, 색깔, 부, 권력을 바탕으로 한 특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이슬람은 정의, 가치, 정직, 공정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성 꾸란과 선지자의 말씀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슬람에서 서구에서와 같은 절대 군주나 고전적 민주주의 또는 독재, 전체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 통치는 지배자와 국민간의 상호 계약을 의미하며, 법의 지배, 법 우선 원칙에서 그 정당성이 나온다. 따라서 법은 지배자나 국민들 위에 있고, 하나님에 속한다. 법은 바뀌거나 찬탈당 할 수 없으며, 창조주의 명령과 선지자가 표명해 적용한 방식에 따라 시행된다. 이슬람에서 폭압을 내세우는 정권은 불법이며, 어떤 종류의 독재정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슬람의 정부조직의 정상에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 같이 법을 지켜야 하며, 이런 원칙을 위반해서 행동할 수도 없다.

이슬람에서 입법과 행정 기구는 언제나 법을 만들 수 있으며, 사회의 필요와 발전을 근간으로, 법의 일반적 틀 속에서 운용된다. 이슬람 사회의 국내 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의 외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무슬림은 언제나 법을 만들고 발전시켜 왔다. 사회 구성원은 “더 높은 원칙”을 가진 이슬람 법과 함께 인간이 만든 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슬람에서 샤리아 원칙의 해석상 이즈티하드(독자적 판단), 이스틴바트(연역적 추리)와 이스틱라즈(귀납적 추리)사용에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민주 국가에서 법의 근본에 인종적 차별이나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 사회에서는 인권의 신장, 정치적 참여, 소수 권리의 옹호, 개인과 사회의 의사결정 기구에의 참여가(개인과 사회의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보장되는 상황의 구축이 촉진된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압박이 가해지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돼야 한다. 또한 소수 민족집단 구성원들도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 이런 류의 입법이 국제법과 국제 협약의 규범 하에 만들어지면, 이슬람도 이에 반대하지 않는다. 성 꾸란과 순나에서 위에 언급한 권리와 관련하여 제시한 보편적 가치를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슬람은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국가가 위와 같은 틀 안에서 국민들의 종교 활동 기회를 보장하고 그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한다면, 이런 제도는 성 꾸란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런 국가가 있다면 다른 체제의 국가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하겠다. 세계의 여러 발전도상의 민주국가에 나타나는 것처럼 인권과 자유가 충분히 보호되지 않으면 그런 제도는 입법자와 행정 조직에서 검토돼야 한다. 그런 이상적인 입법을 위해서, 입법자는 법의 보편적 규범에 따라 그 제도를 개혁, 갱신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그런 개선 방식이 샤리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샤리아 율법에서 국가 체계는 종교 원칙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샤리아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샤리아라는 말은 일면 종교와 동의어이지만, 하나님의 명령, 선지자의 말과 행동, 무슬림 사회의 공감대를 통해 옹호되는 종교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종교생활 속에서 국가행정과 관련되는 원칙은 단지 5%로, 나머지 95%는 신앙 항목, 이슬람의 기둥 원칙과 종교의 도덕 원칙과 관련되고 있다.

[무슬림 세계, 특집호, 2005년 7월, 95권 3호, 325-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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