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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무스타파 예실 터키 기자작가재단 회장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무스타파 예실 터키 기자작가재단 회장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지성인은 누구인가?” 2008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른 사람은 뜻밖에도 터키 출신의 이슬람 사상가인 펫훌라흐 귈렌(76)이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귈렌 추종자들의 ‘클릭 파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귈렌은 전통적 이슬람의 사랑과 관용의 정신에 민주주의•시장경제•세계화•과학기술 등 현대적 요소를 접목시켜 이슬람권의 변화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가 제창한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인 ‘히즈멧’(터키어로 ‘봉사’라는 뜻) 운동은 교육•자선•구호•의료•금융•언론•문화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적 네트워크 운동으로 발전했다. 봉사 정신과 첨단 지식으로 무장한 히즈멧 운동가들은 중동에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 아메리카까지 전 세계에서 귈렌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터키는 지금 정치 권력과 히즈멧 세력의 충돌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집권 12년째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실망한 히즈멧 세력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히즈멧 운동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 기자작가재단의 무스타파 예실(51) 회장을 만나 최근 터키 정세에 대해 물었다. 기자작가재단은 종교 간, 문화 간 대화와 소통 증진을 위해 1994년 설립된 터키 최대의 지식인 단체다. 신병 치료를 이유로 15년째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은거 중인 귈렌은 재단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는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이란 칭송을 들었다.

“약 50년에 걸친 터키의 민주화 과정을 돌이켜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부족한 점도 많았다. 특히 군(軍)이 문제였다. 군은 민간에 대한 ‘후견인’을 자처하며 국민이 선출한 문민정부의 결정에 간섭해 왔다. 정부가 군의 말을 듣지 않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60년, 71년, 80년, 97년 등 네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 정부는 군부 실력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법처리를 통해 군의 파워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터키 민주화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또 2010년 국민투표를 통해 일부 헌법 조항을 바꿈으로써 인권과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일정한 진전을 이뤘다.”

-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인가.

“당초 약속한 대로 추가적인 개헌을 통해 과감한 개혁을 계속했다면 터키는 정치•경제적으로 괄목할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AKP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집권당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범야권 세력을 억압하고 약화시키는 쪽으로 갔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 아닌가.

“에르도안 정부에 기대했던 것은 추가 개헌과 작은 정부였다. 과거 군인들이 만든 헌법을 확 뜯어고쳐 유럽처럼 정부의 권한과 규모를 축소했다면 지금 터키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더 작고, 더 민주적인 정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 당에 의해 국가가 포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수의 뜻을 대변하던 AKP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국가가 되어 국가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 일체형 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AKP가 다원적 성격을 잃고, 국가와 당을 동일시하게 된 것이 지금 터키가 봉착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다.”

-오늘의 터키를 보면서 히틀러가 집권하던 때의 독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던데.

“에르도안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지금 터키 언론은 다양성을 잃고 양극화하고 있다. 집권여당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모든 세력을 악마화하고 몇 명의 소수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에르도안에게 쓴소리를 하는 측근이 없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히즈멧 세력과 에르도안 정부의 관계에 결정적으로 금이 간 것은 지난해 12월 현직 장관들에 대한 검찰의 부패 수사가 본격화하면서부터 아닌가.

“그 전부터다. 국민투표의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에르도안은 터키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23년에 맞춰 ‘비전 2023’이란 걸 내놓았다. 그때까지 장기 집권할 목적으로 AKP의 세력 기반이 되는 종교•시민단체에 일종의 충성 맹세를 요구했다. 시민 세력 중 가장 지지기반이 넓은 것이 히즈멧이다. 하지만 히즈멧이 ‘우리는 특정 정당에 예속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그때부터 탄압이 시작됐다. 시중에 떠도는 모든 부정적 소문의 배후에 히즈멧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성과가 없자 2012년부터 히즈멧으로 들어가는 모든 돈줄을 차단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다.”

-히즈멧이 ‘국가 내의 국가’, 즉 ‘평행 국가(parallel state)’를 노린다는 얘기도 있던데.

“부패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에르도안은 ‘이것은 사법부를 동원한 히즈멧의 쿠데타’라고 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다. 4만 명이 넘는 검사와 경찰관•공무원을 파면하거나 전보 조치하고 사법부를 행정부 소속인 법무장관에 예속시켜 부패 수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법부에 대해 행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꼴이다. 그런데도 에르도안은 히즈멧의 쿠데타니, 평행 국가 음모니 하며 계속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터키의 검찰과 경찰에 히즈멧 지지자가 많은 건 사실 아닌가.

“히즈멧은 50여 년 전부터 교육 운동을 벌여왔다. 히즈멧이 세운 학교나 기숙사 혹은 대입준비학원에서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해 사업가나 학자•언론인•관료•법조인이 된 사람이 많이 있을 수 있다. 히즈멧 학교를 졸업하고 검찰이나 경찰에서 일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히즈멧과 정신적•지적으로 연결돼 있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했는지 아닌지다. 하지만 집권여당 내 누구도 이 질문은 하지 않는다. 단지 히즈멧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유죄 추정을 하고 있다. 부패 수사 문제가 터진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평행 국가 음모와 관련해 제기된 소송은 한 건도 없었다. 물론 어떤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정부적 언론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평행 국가란 말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이스탄불의 탁심 공원 시위 사태 1주년을 맞아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히즈멧 운동과는 상관이 없나.

“없다. 히즈멧은 시위를 민주적 권리로 보지만 한 번도 이 권리를 거리에서 행사한 적이 없다. 가두시위는 외부세력에 의해 조종되기 쉽다. 또 공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데다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즈멧은 의사 표현 방법으로 가두시위를 지지하지 않는다.”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항의 표시를 하러 거리로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지만 히즈멧은 가두시위 대신 신문에 글을 쓰고, 패널 토론에 참가하고, 텔레비전에 나가 의견을 표명하는 등 지적인 방법을 택해왔다.”

-에르도안은 귈렌의 송환을 미국에 요청하겠다는 입장인데.

“귈렌과 관련해 진행 중인 소송이 없고 범죄행위를 구성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송환 요청을 미국이 들어줄 리 없다. 그걸 알면서도 에르도안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귈렌은 미국의 졸(卒)이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한편으로는 미국을 전략적 동반자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히즈멧을 통해 미국이 터키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이런 모순적 태도가 에르도안의 대외적 평판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해 귈렌이 명시적으로 의견을 밝힌 게 있나.

“귈렌은 특정 개인을 거명해 말하지 않는다. 남을 비난하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표현과 태도를 늘 강조한다. 그러나 절도와 부패는 정부의 신뢰를 손상시켜 정부를 약화시킬 거라는 말은 했다. 사고의 다양성을 자산으로 여겨야 하며 양극화가 터키의 안보에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했다.”

-히즈멧과 같은 시민사회운동이 다른 나라에도 있나.

“교육을 통해 봉사한다는 점에서 예수회가 히즈멧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예수회는 종교단체다. 히즈멧은 종교단체가 아니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다원적 형태를 띠고 있다. 히즈멧에는 무슬림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 재단만 해도 무신론자가 있고 수니파가 아닌 알라위파 무슬림도 있다. 가톨릭이나 그리스정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히즈멧은 종교적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보편적 차원에서 사회에 봉사한다는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비슷한 단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원리를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단체가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히즈멧과 관련된 기업에 여러 가지 압박이 들어오고 있나.

“물론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문닫게 만들고 싶어 한다. 히즈멧의 자선구호단체인 킴세욕무는 다섯 달째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히즈멧을 지지하는 사만욜루 TV는 새 건물을 완공했지만 사소한 트집을 잡아 준공 허가를 안 내주고 있다. 우리 재단이 국제행사를 위해 호텔을 빌렸는데 정부가 압력을 넣어 계약을 취소시켰다. 히즈멧을 후원하는 기업들은 세무조사나 인허가 문제뿐 아니라 일감이 끊길 것을 걱정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장래를 어떻게 보나.

“이런 비민주적 상황이 오래 갈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는 법이 없고, 법이 없으면 신뢰가 없고, 신뢰가 무너진 곳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가 끊긴 상태에서 터키의 경제적 안정은 유지될 수 없다. 에르도안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라를 끌고 갈 순 없을 것이다.”

무스타파 예실은 …   1963년 터키 서부 차낙칼레 생. 이스탄불 마르마라 대학 신학부 졸업(85년). 대학 졸업 후 6년간 터키 여러 도시에서 고등학교 종교학 교사로 재직. 이즈미르 도쿠즈 에이륄 대학 사회학 석사(92년). 터키 일간지 자만 런던지국장, 프랑크푸르트 월드미디어그룹 회장 등 역임. 영국 위즈덤초중등학교 설립. 터키 기자작가재단 회장(2008년~현재)

[인터뷰 후기]
작년 만해평화상 받은 귈렌, 예실 회장의 스승

예 실 회장은 귈렌의 직계 제자다. 젊은 시절 2년 넘게 함께 지내며 하루 6~7시간씩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예실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재단 사무실을 찾은 지난 2일 이스탄불에는 때아닌 폭우와 우박이 쏟아졌다. 그는 지난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추억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너무 따듯하고 가깝게 느껴졌어요. 한국전쟁 때 피를 나눴던 형제애 때문일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공손함과 예의, 정서에서 두 나라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걸 곧 깨달았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만해대상 심사위원회는 터키 기자작가재단 명예회장인 귈렌을 지난해 제17회 만해대상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관용의 정신에 입각해 종교 간, 문화 간 대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예실 회장은 귈렌을 대신해 상을 받기 위해 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았었다.

“한국 불교계 인사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스님들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가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기자 또한 그의 열린 자세와 솔직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기사원문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6/13/14526059.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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