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국내 흐름에 관하여

터키의 국내 흐름에 관하여

STV 와 KANAL D

터키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터키는 긴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터키 사회의 일반적 구조로, 누구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점에서 아직 올바른 길을 찾지 못했다.

이와 같은 계몽의 시대에 우리는 아직 계몽이나 성숙한 민주사회에 필요한 요소를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정치는 사리사욕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 시대의 한 위대한 사상가가 말했듯이 “이해 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는 괴물이다.” 일부 사람이 정치를 괴물로 만들고 있으며 정치는 사리사욕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터키 사회에는 화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터키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민주적으로 행동한다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논리적 판단 이전에 감정이 앞서고 언론, 정부관료, 정치 지도자들이 이를 수용한다면, 많은 잘못이 생길 수 있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는 모든 사람에 속하는 것이기에 정권보다는 종교에 더 위험한 것이다. 누구나 종교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세속의 평화를 찾아야 하며 신앙인의 마음은 그 안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현재 터키에서 세속주의가 위협받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슬람과 세속주의 간에 화해가 추구된다면, 이슬람의 견해에 따라 즉, 꾸란의 “너희에게는 너의 종교, 나에게는 나의 종교”라는 구절처럼,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국가가 종교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종교나 신자의 종교생활에 개입하지 않고, 편견 없이 활동한다면, 문제가 전혀 없다. 현재 세속주의가 위협받는다거나 미래에 그럴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내일의 터키를 향해

선생이 사회에서 부각되는 것은 터키가 과거의 자체 “보호막”에서 벗어나는 흐름과 관계가 있는가?

국민과 정부가 앞으로 발전할 마음의 자세가 없고,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어떤 보람된 일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한일을 그 사상 때문에 반대하는 관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키의 내무 및 외교 정책은 변하기 시작했다.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적으로 볼 수 없으며, 이런 행동은 큰 잘못이다. 정부와 국민간의 공존은 특히 이 시점에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인가?

전체적으로 정치세계와 국민들 사이에 전개되는 상황은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보아온 바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새로운 조류가 집단적 양심, 집단적 감정, 공동의 사상과 느낌을 대변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이슬람 이미지가 있었다. 이런 이미지를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고착, 조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으며, 통치자나 국민이 이 변화에 개방적이다.

이런 잘못된 추정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의도적이거나 무지 때문인 것으로 본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거칠게 행동할 수 있으며, 사람의 성격과 사고방식이 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슬람은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기 위해 왔다. 누가 여러분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는 이미지가 현재에 이슬람에 있으며,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서구에서 이슬람 세계를 보는 시각이었다. 사람 등에 있는 혹 같은 존재이다. 알제리와 수단의 무슬림이 이런 견해 때문에 테러로 시련을 겪었다. 아주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이슬람을 9세기 동안이나 꾸란과 예언자의 전통인 순나에 계시된 사랑과 관용의 완전하고, 신축적, 광범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해온 우리나라가 이제 그 혹을 이슬람의 등에서 우리의 넓은 비전, 배려, 관용을 통해 없애줄 것이라 믿는다.

패러다임을 수수께끼로의 변형

패러다임이 알 수 없게 되면, 일반적 독단주의로 가게 되는가?

그렇다, 독단주의에 반대해서 새 교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표현은 나의 몇몇 동료들에게 자극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현 문제는 교리 전쟁으로, 한 교리전선은 다른 전선과 싸우고 있으며, 그 교리는 매우 엄격하여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광범위하게 대중에 영향을 미치며 그 목소리는 크고 효력이 있다. 그 극단에 속하지 않고 중간에 있는 대다수는 온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극단주의를 완화하고 우리가 오늘날 필요로 하는 관용, 대화, 인내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간지 자만, 에유프 잔 기자,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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