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리아 국가 출현에 대한 두려움

가장 많이 표출된 것은 귤렌이 아타투르크가 터키에 소개한 “세속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강력한 지지자 조직을 만들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2장 “터키 역사상 이슬람과 국가의 관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23년 10월 29일 아타투르크는 의회에 헌법 수정을 제안하여, 국가의 정체를 “터키 공화국”으로 바꾸고, 칼리프 제도, 종교 자선부, 국가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가진 부서를 폐지했으며, 이후 의회는 샤리아 (이슬람 법) 법정과 메드레세 (종교학교)를 폐지한다. 이와 함께 신 공화국은 모든 종교단체를 정부 통제하에 두고 이슬람 법을 폐기하고 신 형법으로 대체했다. 그 후 1928년 의회는 헌법에서 “터키의 국교는 이슬람이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1937년 헌법이 개정되어 터키는 세속국가가 된다.

이와 같이 이슬람 국가에 대한 기대는 공화주의, 세속주의 정권의 합법성을 위해 사라졌다.[1] 터키는 과거 종교간 대화의 유산을 뒤로 하고 유럽과 서구의 발전과 현대화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아타투르크는 믿었던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터키 공화국은 세속국가로 통치되어, 종교는 아타투르크와 그 지지자들이 프랑스를 모형으로 도입한 세속주의에 따라 엄격히 개인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귤렌의 비판자는 그가 아타투르크가 탄생시킨 세속 공화국을 전복하고 1979년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세운 것과 같은 이슬람 국가를 터키에 세우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귤렌 운동이 터키 세속정부에 대한 계산된 위협이며, 또한 귤렌과 그 지지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터키 정부를 전복할 의도로 많은 추종자를 만들고 상당한 재원을 확보하여 그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귤렌의 연설과 책자를 읽고 백 여명에 달하는 그의 지지자들과 이야기 해본 결과, 그가 터키 국가를 전복하여 세속정부를 이슬람 국가로 바꾸려는 의도를 본 저자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 귤렌은 정치적 토론을 피하며, 그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토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으며, 민초들의 정치 행동집단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터키나 해외에서 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기존 자료를 근거로 저자는 그레이엄 풀러 CIA 국가정보 위원회의 전 부회장의 의견에 동조한다. 귤렌 운동은 정치 운동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은 관용, 사회적 책임, 교육적/사회적 성취를 위한 현대화의 추구로 돌리려는 사회운동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귤렌과 그 지지자는 아타투르크가 현대화, 강국 터키, 교육의 중요성과 과학의 발전을 위해 도입한 개혁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운동은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주의 색채를 많이 띠고 있다. 과학적 발전과 현대화는 이슬람 이상에 대한 열정과 실천하는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성취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운동 참가자와의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표출되는 요구는 국가가 엄격하게 종교 관습이나 행동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국가의 종교 통제를 기반으로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활동을 금지시키는 라이시테 제도 (2장에서 상세히 설명)와 미국의 법으로 명시된 국가와 종교의 분리 제도 간의 비교가 인터뷰중 간간히 이뤄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각각 독립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종교집단과 개인은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재량으로 그들의 신앙과 예식을 실행할 수 있다. 한편 종교집단은 국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한계를 가진다. 미국사람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2]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종교 복장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으며 폭 넓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인터뷰중, 귤렌 지지자는 국가의 간섭없이 그들의 종교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유를 원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종국에는 정부기관들을 인수하려는 조용하고 체계적인 계획하에 정부 고위직, 군사, 정책 및 기타 행정조직에 귤렌 추종자가 교묘히 “침투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터키 인구의 약 8-10%가 어떤 형태로든 귤렌 운동에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귤렌에게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들이 이런 기관에 일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통계적 확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터키 인구가 7천만이고 귤렌 지지자들이 교육을 잘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5.6-7백만 명의 사람 중에서 누군가는 이런 기관에서 일할 수 있다고 쉽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연구 자료 어디에서도 추종자를 미리 심어 종국적으로 기관을 인수한다는 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터키에서 일부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귤렌과 지지자들에게 더 동정적이라는 증거는 충분히 있으며, 또한 터키의 정치 상황이 국내외의 귤렌 운동의 성장과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의 사상에 고취된 사람은 꾸란 학교나 사회의 고립된 영역으로 은거하지 말고 정부기관, 군부 등 사회의 모든 기관의 구성원이 되라고 귤렌이 주장하는 증거도 있다.

하지만 귤렌이나 그 지지자들이, 이런 기관을 점차적으로 인수하기 위해 사람을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정부 요직과 군부에 심어 놓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 Cetin (2008)
[2] 예외는 시크 교도가 금속탐지기를 통해 칼이나 단도를 휴대하도록 하는 보안 규정이나 특정 종교행사에 터번을 착용하는 자유에 관한 것임. 요루바족과 미 원주민은 특정 동물 살육이나 종교행사에서 페요테 사용시 특별 허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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