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대상인 귤렌과 귤렌 운동

페툴라 귤렌

운동이 터키와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번성하여 성공하자, 이 운동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터키에 주는 영향을 두려워하는 귤렌 및 귤렌 운동 비판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1] 그들은 1970년대에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의 근대화 노력을 좌절시키고 매우 보수적인 이슬람 정부로 바꾼 정권 교체와 같이, 귤렌 운동이 세밀하게 주도된 정치적 전복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두려워 한다. 또한 그들은 이 운동이 터키를 전통주의로 낙후시키고 터키의 근대화와 유럽연합 가입 노력을 무산시킬 것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의 기저에는 서구 특히 미국이 과격파 이슬람의 테러를 방지하기 하여 중동에 온건한 이슬람이 출현할 수 있게 학교, 병원, 거대한 미디어 왕국 등 이 운동의 봉사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요약하면 귤렌은 터키뿐 아니라 그 지지자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세계의 곳곳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11월에 미국 이민국은 미국에 9년 동안 살고 있는 귤렌에게 보통 “그린 카드”로 불리는 미 영주권을 거부했다. 또한 판결 재심사를 위한 항소에서도 귤렌은 패소한다. 귤렌이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학자”라는 논거가 그가 미국에서 학자로서 영주권을 받기에는 충분치 못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의 검사 논고는 250억불 달러 이상을 (미 국무부 검사들의 추정)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터키 정부와 CIA가 귤렌 운동을 재정지원 한다고 주장하면서 귤렌의 재원을 세부적으로 열거했다. 2008년 7월 16일, 연방 법원은 증거 부족으로 원심 판결을 기각하고 국토 안보국 장관에게 귤렌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명령했으며[2], 동년 10월에 미국 정부는 귤렌에게 정식으로 영주권을 주었다.

8년 전인 2000년 8월 31일, 귤렌은 터키 정부 검사인 누 메테 육셀로부터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만든 신생 공화국의 세속정부를 전복하여 신정 국가로 바꾸려는 운동을 전개한다는 명목으로 기소되었다. 몇 년에 걸친 법정 심리, 조사, 법정 서류 검토 끝에 2006년 5월 5일, 귤렌 사건은 국가 치안 재판소에서 기각되어 그는 무죄임이 밝혀진다.[3]

그렇다면 언론, 법조계,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로부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귤렌은 어떤 사람인가? 일부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터키의 간디인가?[4] 아니면 많은 비판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호메이니란 말인가?[5] 존경의 대상인가, 아니면 독재자와 같은 경멸의 대상인가?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지지자가 있고 운동 배후에는 정부가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충분한 재원을 가지고 있는 귤렌 운동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의 100여 개국에 있는 수백 개의 학교, 6개의 최신식 사립병원, 터키에서 최대 구독자를 자랑하는 일간지, 터키의 최대 이슬람 계통 은행 그리고 재난 구조에 연간 1,600만불 이상을 모금하는 구호 단체를 설립, 유지하는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왜 70살이나 되어 건강도 좋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터키인 하나가 어떤 터키인들에게 독설에 찬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가? 귤렌 운동 시작 후 30여 년 동안을 거쳐 이 운동이 성공한 배경은 무엇인가? 현재 터키를 넘어 세계의 터키인과 비 터키인 모두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 책의 목적은 페툴라 귤렌과 그 운동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저자의 터키 여행 현장에서 얻은 자료와 텍사스 휴스턴의 귤렌 지지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동료들, 내 강의의 청중이나 휴스턴 대학에서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대화의 결과를 보면, 귤렌과 귤렌 운동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생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운동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점점 많은 미국인들이 종교간 대화 목적의 터키 여행과 미국의 귤렌 지지자들이 지원하는 행사에 참가하면서, 이 성공적인 온건한 터키-이슬람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1] Yavuz는 (2003) 귤렌과 그 운동이 4가지 영역에서 터키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l) 남녀 관계 (2) 쿠르드 문제에 대한 침묵 (3)1997년 2월 28일 쿠데타 지지 (4) 의무 중심의 교육체계
[2] 이 재판의 심리 관계는 다음 문헌 참조. 2008년 7월 19일자 2008년 7월 23일자
[3] 이 재판에 대한 내용은 Aslandogan (2006) 참조. 또한 2007년 10월 21일자 참조
[4] 마하트마 간디 (1869–1948)는 인도의 주요 정신적 정치 지도자로 인도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열렬한 힌두교 신자로 비폭력을 주창하고, 조그만 집에서 자급적으로 검소하게 살면서 채식 생활과 함께 자기 정화와 사회적 시위 수단으로 장기간 단식을 시행했다. 그는 전국적인 운동을 통해 빈곤 타파, 여성 권리 신장, 종교적/윤리적 화합 구축, 천민의 미천함 종식, 경제적 자립, 외국의 지배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으로 시민의 평등권 사상과 자유 쟁취 운동을 고취했다.
[5]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1900–1989) 1960년대에 이란의 근대화를 반대하는 시아파 종교 저항운동을 통해 주요 이슬람 학자, 지도자가 되었다. 이란의 파레비 왕은 그를 처음에는 터키로, 그 후 이라크로 추방했으며, 이라크에서 그의 영향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커지는 그의 세력을 두려워해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78년에 그를 프랑스로 추방했다. 호메이니는 프랑스에서, 서구에 대한 증오, 이슬람 혁명의 필요성 등 보수적 종교 메시지를 계속 전파했다. 1978년, 호메이니는 이란으로 귀국하였고 그 추종자들이 이란의 파레비 정권을 전복하고 호메이니를 국가 지도자로 세웠으며 그는 1989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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