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슬람이 매우 대중적인 현 시점에, 이슬람과 정치 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견해로는 이슬람과 정치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거나 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이슬람 종교는 정치와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종교의 다양한 측면을 무시하고 종교를 정치 자체로 받아 들이고 있다. 성 꾸란에 행정과 정치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선지자의 언행이 이런 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 꾸란에 나오는 “우루 알아므르”(통치자), “이타아트”(통치자에 대한 복종), “슈라”(협의), “하르브”(전쟁), “수르”(평화) 등의 용어는 정치와 법적 결정과 관련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법적 제도와 정치와 통치에 관련된 사항도 성 꾸란 구절에 나온다. 하지만 신앙의 원칙과 이슬람 기둥과의 관계와는 달리 이슬람에서 통치와 정치의 개념을 단일 패러다임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를 통해서 선지자 시대 이후 이슬람 세계에는 여러 형태의 국가가 있었다. 이슬람 초기의 선거와 그 선거의 특징을 제외하더라도 그 점은 확실하다. 이런 통치 유형간의 주요 방법상의 차이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어도, 실제로 세부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나타난다. 이런 통치의 방법론상 차이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통치 형태를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 나는 이런 현상은 이슬람에서 해석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하는 독자적 판단(이즈티하드)의 결과로 보고자 한다.

올바르게 이해하고 긍정적 결론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이슬람의 주요 근원인 성 꾸란과 순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역사적 경험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 꾸란에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이외에도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두 개 범주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알라이다.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상기시키는 구절들은 선지자와 추종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원래대로 적혀있으며, 둘째 범주에 대한 성 꾸란의 구절과 선지자의 말은 인간의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 삶의 원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많은 구절의 말미에 짧은 경구를 통해 관련된 지혜, 개선점, 장점 등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예컨대 정의, 권리 존중, 참됨, 동정심과 자비심, 협의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 수행, 정숙한 삶, 사람 속이지 않기 등은 이런 범주에 속하는 예이다. 인간관계를 규정짓는 이런 류의 구절들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읽어보면 무슬림이 미래의 문제를 풀어나갈 방향이 제시될 수 있다. 해석자와 무지타히드(독자적 판단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는 어느 정도 이런 범주를 그들의 해석과 분석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성 꾸란과 선지자의 말씀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경험에 대한 언급이 더욱 빛을 발휘하는 많은 주제가 나타나 있다. 그런 주제의 세부사항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져 왔다. 정치, 국가, 사회 통치에 관한 신의 명령과 예언적 제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어, 역사를 통해 많은 다른 모습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종교의 양상은, 시간이 위대한 해석자라는 점 또는 자연스럽고 관용적인 종교라고 알려진 이슬람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성 꾸란에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나온다. 베두인족에서 문명화된 사람들, 비문명화 된 사회에서 선진 사회, 단순한 대중에서 잘 조직되어 개화된 사회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성 꾸란에서 이런 집단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 방식, 관점, 평가와 삶이 감안되어 취급되고 있다. 인간의 신과의 관계에서, 성 꾸란은 간략하게 설명함으로써, 후세에 세부사항이 채워지도록 하였으며, 인간 상호 관계에서는 구체적으로 표시하여 정착된 원칙들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 전통에 대한 일부 이교 집단의 해석을 제외하고, 첫째 범주의 이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둘째 인간관계 범주에서는 여건, 시간과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으며, 자연히 이런 차이점은 사법 및 행정 제도에 반영되었다.

정치가 종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종교의 정착된 기둥의 일부라고 주장한다면 이슬람을 옳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성 꾸란의 일부 구절이 정치, 정부 조직, 통치 형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 꾸란 내용의 의미를 그런 문제와 결부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오해가 생기게 된다. 이런 오해는 그들의 이슬람에 대한 열의와 함께, 관점을 역사적 경험으로만 한정시키며, 이슬람 사회의 문제는 정치와 통치를 통해 더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그들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이런 방식에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 가족, 사회와 같은 공동체 관계의 규제에 있어 통치와 행정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성 꾸란의 가치체계에서 이런 측면은 부차적인 것이다. 신앙(이만), 귀의(이슬람), 선행(이흐싼), 사회의 신적 도덕성 수용과 같은 주요 원칙(움무하트)으로 대변되는 가치는 행정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의 기본이 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성 꾸란은 신의 명령으로 창조된 우주에 관한 책의 번역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해석으로, 지상과 천상에서의 신의 명명을 설명해주고 있다. 성 꾸란은 이슬람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처방이며, 사람들의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위한 단 하나의 안내서이다. 내세를 향해 현세의 여정을 가는 인간의 위대한 안내서가 된다. 끝 없는 지혜의 원천으로 그런 책이 정치적 담론으로 격하되거나, 정치 이론 또는 정부 형태에 관한 책으로 생각되어서도 안 된다. 성 꾸란을 정치적 담론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성스러운 책에 대한 커다란 모욕이며, 또한 인간이 신적 우아함의 깊은 원천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성 꾸란은 인간 영혼을 풍부하게 하여 현명한 정치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정치가 도박판 또는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무슬림 세계, 특집호, 2005년 7월, 95권 3호, 325-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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