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과 기독교인 _ 터키의 종교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무슬림과 기독교인 _ 터키의 종교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우선 이 회의에 초대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기회를 통해 우선 오늘날의 세계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계적인 테러, 인권침해, 기아, 매춘, 외설물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런 위협이 기독교인, 유대교도, 무슬림, 불교도 누구이든지 모든 사람에 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이 종교인이나 성직자 (신부, 랍비, 이맘)에 의해 야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다루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인의 일치된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은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종교간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성서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남님이 원했다면, 모든 인류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말은 지상에서 그의 뜻을 이뤄야 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욕구로 협력과 조화를 성취할 시점까지 하나님이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1985년 모로코 방문 중, 기독교 세계 특히 가톨릭의 지도자인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지금까지 서로 오해 속에 지내왔으며, 과거에 논쟁과 전쟁으로 서로를 약하게 만들면서 모든 힘을 소진하였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구습을 타파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길에서 선행을 하도록 서로 격려해야 한다.”

1986년 방글라데시 방문에서 교황은 그의 주장을 더욱 강력한 어조로 반복했다. “오해와 차이에서 발생하는 상호 불신과 공포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타인과의 대화와 화합에 대한 교황의 요구는 충분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작금의 야만성을 방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의 허락을 얻어, 나는 여기에서 과거 무슬림과 기독교인간의 대화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50년전 유사한 야만적 행위가 유럽에서 발생, 2천만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유럽 전역을 통해 파괴는 참혹했으며 고통, 고뇌, 절망이 만연했다. 이 시점에 무정부주의가 사람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 당시 실제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터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대의 가장 저명한 이슬람 학자였던 베디우즈자만 사이드 누르시의 목소리로,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예언자의 정통적 전승에 의하면 (그에게 평화와 축복이 내리기를) 종국에는 정말로 믿음이 강한 기독교인은 그들의 종교 상의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 꾸란을 믿는 무슬림과 연합할 것이라 한다. 이 때, 종교와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형제, 신앙의 동료뿐 아니라, 공동의 적인 철저한 무신론과 싸우기 위해서 차이점에 대한 논쟁을 잠시 중단하고 진실하고 정신적인 기독교인들과 연합할 필요가 있다.”

그 후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북쪽의 흐름” (공산주의)이 종교를 파괴하려 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을 보면 이런 연합을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할 수 있다.

이제 토마스 미셸 교수 (현재 로마 교황청에서 봉직 중)의 서적에서 다음의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기독교 역사 자체는 수많은 전쟁과 복수로 얼룩져 있으며 과욕, 옹졸함, 착취의 전형이다. 종교 재판을 만들고 십자군 전쟁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사람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수백만의 유대인, 집시 등의 인명을 빼앗은 집단 학살은 유럽 기독교의 산물이다. 이런 것은 역사적 사실로 기독교 사회의 엄청난 폐단인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이 예수의 가르침이나 그 실행을 거부한 결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슬람은 ‘칼의 종교’이지만 주로 방어를 위한 전쟁을 위해 원용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사이드 누르시는 "지금 양심의 (신앙) 자유는 종교상의 무력과 강압 또한 종교적 투쟁과 종교를 위한 무력 성전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정부로부터 기본 규칙과 정치적 원칙으로 수용되고 있고” 세속적 공화국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말년에 사이드 누르시는 기독교인과 화합과 친교를 이루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0년 그는 작품집을 로마의 교황 비오 12세에 보내고 1951년 2월 22일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한 관찰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카톨릭 교회가 무슬림에 대한 존경을 선언하고 이슬람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 후 단지 10여 년에 만에 이뤄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몇 년 후인 1953년에 사이드 누르시는 철저한 무신론의 대두에 무슬림과 기독교인간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이스탄불의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스를 방문했다.

무슬림 사상가인 사이드 누르시의 기독교인과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요청에 대한 기독교 세계의 화답은 약 20년 후에 이뤄진다. 무슬림과 가까이 하려는 조치는 교황 요하네스 23세 시대에 시작했지만, 1962년에 소집되어 1965년까지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서 비로서 실현되었다. 무슬림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우리 교회는 무슬림을 존경한다. 그들은 유일신, 하늘과 땅의 창조주, 모든 것에 전능하며, 사람에게 계시를 보냈으며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할 신을 믿고 있다. 공의회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함께 과거 몇 세기에 걸친 상호간의 오해와 적대를 풀고, 서로 이해하고 사회적 평등, 평등, 자유를 성취하며 모든 인류를 위해 그런 것과 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보전토록 성실히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이 결정은 1965년 10월 28일 투표에서 찬성 1763, 반대 242로 가결되었으며, 그런 결정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제 기독교로서는 대화의 기본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서 최근세기 유럽의 가장 유명한 정치가의 한 사람인 드골 장군의 연설문 중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 보자. 지중해 저편에서 발전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들도 문명, 문화, 인본주의 그리고 우리 산업화 사회에서 잊혀지기 시작하는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인간관계를 배워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산업화 사회를 건설하려면 우리의 문화를 서로간에 넓게 개방해야 할 것이다.”

드골 장군이 이런 관점을 피력한 후 25년 후에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중요한 발언을 했다. 그는 옥스퍼드 이슬람 센터의 개막식과 또한 지난 12월의 서섹스 주 윌튼 공원 연설에서 이슬람 문화와 더 많은 교류가 있어야 하며, 한걸음 더 나가 서구 문화는 그런 관계를 통해 철저하게 쇠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셀 르롱은 오랫동안 바티칸의 무슬림 관계 사무국을 지도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무슬림-기독교 대화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는 꾸란의 한 구절에 의하면 (5:48) "하나님이 그렇게 원했다면" 우리 인류를 모두 한 나라의 한 국민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여러 다른 나라 사람으로 창조했다. 여기에 위대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그 유용한 저서에서 르롱은 그의 대화에 대한 토의를 아브라함에 바탕하고 있으며 두 종교의 신자들이 그 점에서 만나도록 요구한다. 무슬림이 예수와 모세를 인정하고 복음서와 모세 5경을 믿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알지 못한다고 자주 강조한다.

튀니지 교수인 무함마드 얄라위에 의하면, 세계적 상황을 고려하여 대화와 협력의 촉진을 위해 “오늘날 세 가지 요나서가 필요하다.” 각각 유대교도, 기독교인, 무슬림을 위한 것을 말한다.

그는 무슬림 요나서는 그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할 것이라 말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이는 잘 한 일이다. 또한 서구를 위협하는 유물론과 강대국의 경제 압력을 배척하는 것도 올바른 길이다. 하지만 선조의 종교를 따르고 정체성/신념/정신을 보전하는 것과 같은 권리를 행사하면서, 꾸란의 원칙과 명령을 연구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만 탐닉하면 안되며, 시대에 뒤떨어진 공격적 마음도 버려야 한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타 문화와 종교에 개방적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현재 서구 문명에는 불안을 조성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측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문명에는 광범위한 정신적 유산이 있으며 경이로운 과학적 발전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유의 방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꾸란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단지 하나님에게만 되돌아 간다고 말하고 있다. 꾸란은 어떤 우상이나 우상숭배 또는 그 결과 광적인 종파주의를 배격한다. 사람이 고결하고, 공정하며, 박애심을 가지고 동정적일 것을 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대교도에도 요나서는 필요하며 다음과 같이 명할 것이다. “유대인은 장구한 세월을 거쳐 고난을 겪어 왔으며, 박해와 탄압을 받아왔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유대인이 중세 기독교 세계와 나치 수용소에 겪은 고난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의 고통을 듣고 있는가? 구약과 신약의 예언자들은 유대교가 통일을 바라고, 신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권리를 존중하며 이방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예언자들이 계속 설교했다. 하지만 과거 수년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한 일은 어떤 것인가? 유대교의 교리에 충실토록 주장하는 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에 필요한 요나서는 교회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동시대 사람들이 제기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여 왔다. 재해석, 종교의식에 새로운 가치 부여, 신학, 교회의 통합, 사회 문제와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의 확대를 통해, 기독교는 권능과 생명력을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유럽의 카톨릭과 신교도는 현재의 국제관계로 발생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탈식민지화 이후 북부와 남부의 공정한 균형을 이루게 할 새로운 관점이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진정 발견하였는가? 동양과 서양이 관련되는 문제에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였나? 마지막으로 다른 종교와 문화, 특히 서구에 잘못 알려진 이슬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요한 바오로 2세의 1979년 터키 방문, 1980년의 케냐 방문, 1981년 파키스탄 방문, 동년 필리핀 방문, 동년 인도네시아 방문, 1985년 모로코 방문, 1986년 방글라데시 방문, 그리고 다양한 만남과 방문 중에 이루진 여러 주제에 대한 그의 연설은 대화의 지평을 넓혔다. 대화를 위한 많은 회의가 영국, 프랑스 특히 독일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결과와 결실은 국부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으며, 말할 필요 없이 몇백 년의 잔재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 이후 지난 30년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여러분의 허락을 얻어 이제 대화의 주요 주창자 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그 존경스런 사람은 “사랑과 대화”라는 슬로건과 함께 나타났으며, 이를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다. 이 사람은 바로 페툴라 귤렌이다. 그는 사이드 누르시와 그 사상의 매우 중요한 추종자로, 앞에 설명한 바와 같이 사이드 누르시는 터키와 이슬람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인과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다.

페툴라 귤렌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 케냐, 미국, 태국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지역에서 개교한 거의 300개에 달하는 학교에서,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교도 학생들은 평화와 행복 속에 함께 공부하고 있다. 사실 말다비아, 야퀴티스탄, 몽골 같은 나라에서 학생 대부분은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유대인이 아니며, 한 무슬림 지도자의 이런 노력은 여러분이 매우 뜻 깊게 받아들일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1996년 페툴라 귤렌이 그리스 정교회 주교인 발토로메오스를 만났을 때, 급진주의자와 광신도로부터 반감을 샀지만, 온건을 지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만남을 환영했다. 또한 유대교 사회의 지도자인 다비드 아서, 바티칸 앙카라 사절인 피에르 루이지를 만나, 그의 대화의 의지를 과시했다.

역사적으로 유혈의 종교 전쟁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대부분 종교인이 악용한 것으로 정치적/경제적 이해의 추구로 이뤄진 것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행한 것을 우리가 실천할 때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는 모든 제자의 발을 씻겨 주고 말했다. "내가 너희의 주이지만 너희의 발을 씻겨주었다. 이제 너희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라.”

물론 이런 이야기는 겸손, 관용, 상부상조를 명령하고 있다. 자 이제 무슬림, 기독교인, 불교도, 유대교도 모두 서로 발을 씻어 주고, 세계 평화로 한걸음 더 나아가자.

우리 재단의 명예회장인 페툴라 귤렌을 대신해서 본 회합의 주최자들에게 축하하며 동시에 존경을 표하고자 한다. 나 자신과 재단의 직원을 대신해서 종교간 대화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는 바이다.

참고
본 기사는 문화간 대화 강단의 사무총장이며 기자 작가 재단의 부회장인 제말 우샤크가 이태리 로마에서 개최된 세미나 “종교간 대화를 통한 타인과 우리 자신의 새로운 세계로의 요청: 이슬람을 중심으로”에 제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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