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는 부활이다

화해는 부활이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번 술레이만 데미렐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았다.

이슬람 소수 알레위파 출신의 작가로서 나는 “국가 화합상”을 수니 우파의 단체로부터 수상했다는 점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제시한 해답은 다차원적이다.

하나: 화해가 이뤄지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있을 곳이다.

둘: 편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셋: 더욱이 편견에 양극화가 포함되면,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넷: 과거의 사건을 들춰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다섯: “7살이든 70살이든 똑같다”는 생각은 사회심리학에 의하면 옳지 않다. 이런 생각은 교육의 유익성을 도외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누구도 다른 사람을 고정관념으로 비난하거나, 어떤 사람이 과거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나쁘다라고 말 할 수 없다.

여섯: 이제 과거의 분열적, 도발적, 양극화 개념에 “작별”을 고할 때이다. 좌파나 우파의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은 발전이나 변화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쓰는 방식이다.

일곱: 술레이만 데미렐 대통령의 과거 정치에서의 행적과는 관계없이 그는 나의 마음에 국가적 인물로 남아있다. 그를 본받는 것이 좋다.

여덟: 페툴라 귤렌은 종교에 민감한 사회영역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이런 지도가 관용과 대화의 문을 열고 국가의 화합을 도모한다면 내가 그에게 협조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가슴 속에 과거의 적대감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가? 이 양극화로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얻었으며 이런 적대자 양성 경주로 우리에게 무슨 득이 있단 말인가?

기자 작가 재단은 다른 단체에 모범을 보여 주는 행동으로 진정으로 주도적 역할 수행하고 있다.

페툴라 귤렌이 이 재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탐정이 수사하는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대신 우리 모두 그들로부터 배우자.

이슬람을 복지당 (RP)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사람은, 페툴라 선생과 그 세계, 종교적 관점이 복지당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정확한 해석으로 종교에 민감한 모든 사람이 복지당으로 낙인 찍혀 한쪽으로 내몰려 있다.

페툴라 선생과 사람들의 그에 대한 애착을 보면, 그들이 교육자를 얼마나 중시하는 지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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