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투르크의 세속주의

페툴라 귤렌

1925년과 1928년 사이에 강성 케말주의자 의회는[1] 공공 생활의 세속화를 위한 일련의 법안을 제정했다. 터키는 과거의 유산을 뒤로하고 유럽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고 아타투르크는 믿었던 것으로, 이제 서구식 국민, 세속국가 창조의 방해요인은 모두 제거할 것을 그는 역설했다. 독립국가를 쟁취한 후, 신생 공화국 정부는 새로운 정부 형태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엄격한 세속적 법률을 집행한다.

아타투르크가 터키 공화국에 채택한 세속정부의 모델은 라이시테 (불어 laicite, 세속주의)로 유럽 특히 프랑스의 모델을 따른 것이다. 라이시테에서 국가의 권력은 확대되고 종교는 개인 영역으로 축소된다. 이는 세속주의의 한 형태로, 공공 생활에서 종교적 신앙과 활동이 배제되고, 국가는 그런 목적을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라이시테는 반 종교적이며 종교를 통제하고 제거하려 한다. 이는 영미의 세속주의에서 종교를 국가의 간섭에서 보호하고 시민사회 구축을 위해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적 네트워킹을 장려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2] 터키의 세속주의는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제거하여 국가 권력을 통해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실 라이시테 체제에서는 심지어 터키 의회 등 공공 토론 장소에서의 종교적 담화 시도는 그 당이나 개인을 금지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종교가 개인 영역으로 축소되고 정부가 통제하는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케말주의자의 정책에서 라이시테는 기본 노선이 되었다.

1935년의 공화인민당의 4차 총회에서 무스타파 케말 (보통 아타투르크로 알려짐,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은 그의 사상과 목표를 “케말주의”라고 선언하였다. 당과 국가를 이끄는 여섯 개의 원칙으로, 민족주의, 세속주의, 공화주의, 국가주의, 개혁주의 및 인민주의를 내세웠다. 이런 원칙은 그 당시 근대화는 바로 서구화라는 유럽적 이념에서 나온 것이다. 계급이 없는, 민족주의적 (터키적) 세속 사회 즉,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색채가 나타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케말주의의 이념은 계급과 인종적, 종교적 갈등 요인을 제거하는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새로운 지도부에 강하게 퍼져있었던 프랑스의 실증주의와 라이시테의 영향으로, 케말주의가 보는 유일한 합법적 개혁의 주체는 국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민족과 국가는 하나로 동일시 되며 모든 종교 특히 이슬람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사회 불안이나 시민들의 항의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국가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다.[3]

 케말주의자의 라이시테는 과학과 실증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사회 재건을 이 원칙에 따라 수행하였다. 그런 정책으로 교육, 경제, 가족, 복장 규정의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이 배제되고, 세속주의는 국가가 과도하게 국민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고 인종, 종교적 차이가 배제되는 것을 의미했다. 터키 공화국은 종교청을 신설하고 공적 영역에서 국민의 종교생활을 관리하고 규제한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의 종교 네트워크가 금지되고, 1937년에 이런 원칙은 헌법에서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 명시되었다. 이런 원칙에서 나온 이념과 정치체계를 “케말주의”라 한다.[4]

케말주의는 계급이 없는, 터키 민족주의적, 세속적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갈등의 계급적, 인종적, 종교적 요인을 제거하는 이념이 되었다. 이와 같이 차이를 없애고 단일화 하는 것이 케말주의 국가의 지도 이념이 되었으며, 더욱이 케말주의자는 변혁은 국가 자신이 수행할 때만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급진적 근대화는 어떤 형태이든 의심과 우려의 대상이 된다. 특히 세속국가에 위협이 되는 종교적 이념에 의한 변혁 시도는 더욱 그랬다.[5]

라이시테 즉 세속주의는 프랑스 모델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기에서 종교는 국가의 통제에 놓이며, 공공생활에서 종교활동은 금지된다. 1801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치하에서 가톨릭 교회는 협약을 체결하고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게 된다. 협약에 따라 로마 교황청은, 주교는 국가에서 임명하고, 모든 신부는 국가가 선정하고 급여를 지불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 터키의 세속주의는 프랑스의 라이시테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더 나가 국가가 종교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이맘을 공무원으로 임명했을 뿐 아니라, 금요일 설교 내용도 국가가 결정하였고 이런 통제는 터키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케말주의자에게 세속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침투하여 인종, 종교적, 지역적 차이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했다. 야부즈와 에스포시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당초 목적과는 반대로 케말주의자의 민족주의와 세속주의 계획은 실제로는 저항적이며 이념화된 이슬람의 탄생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종교적 부흥이 케말주의자 이념에 대한 내부적 변증법으로 나타났다.”[6] 차이 특히 종교적 차이를 배제하는 것이 케말주의 국가의 지도 원칙이 되고,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이 라이시테 체제는 단일 정당인 공화인민당 시절에 (1923–1950) 터키 정치를 주도했던 것이다. 바탕에 흐르는 사상은 국가가 국민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국가가 이슬람을 외국의 언어와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는 관점이었다.[7]

[1] 케말주의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주창하는 사상과 정책을 말한다.
[2] Yavuz, Esposito (2003)
[3] 같은 책에서
[4] Cetin (2010)
[5] Yavuz, Esposito (2003)
[6] Yavuz, Esposito (2003)
[7] Balci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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